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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6일 7.8 규모의 강력한 지진이 튀르키예와 시리아를 강타했습니다.

처음엔 사망자가 몇백 명 정도, 피해 예상이 2~3천 명이라 전하는 뉴스에 너무나 놀라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는데 5일이 지나가는 지금, 두나라의 희생자만도 벌써 2만 8천 명... 이는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의 사망자를 넘어선 규모라 합니다.

무고한 희생이 더 이상 없었으면 하는 맘으로 애도하며 유가족 분들께 조의를 표합니다.

다행히도 세계 각국의 구조대가 적극적 구조활동으로 이념과 종교, 이해관계를 초월한 인류애를 보여주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100명이 넘는 구조대원들(KDRT)이 대재앙을 수습하기 위해 밤낮으로 애쓰고 있는데 각종 미디어에서 실시간으로 현지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꼭 빠지지 않는 문구가 있으니 그건 바로 "형제의 나라 튀르키예'입니다.

명민호 작가의 작품. 도움을 되돌리는 것은 당연한 도리입니다

 

튀르키예? 터키 아니었나?

먼저 궁금한 나라 이름부터~

튀르키예보다는 터키라는 이름이 더 익숙했는데 언제부터인지 튀르키예라고 바뀌었더군요.

알아보니 터키의 에르도안 정부의 요청을 유엔에서 받아들여 2022년부터 공식적으로 터키에서 튀르키예(Turkiye:튀르크인의 땅)로 변경되었다 합니다. 사실 튀르크 사람들은 그동안 나라 이름 때문에 불만이 많았고 그 때문에 국가명을 바꾸게 된 것이라는데 그 이유는 2가지입니다.

- 터키(Turkey)는 익히 알고 있는 추수감사절 먹는 동물인 칠면조와 이름이 같다는 것

- 동물 이름과 같다는 것도 기분 나쁜데 영어권 나라에서는 겁쟁이나 패배자의 은어로도 쓰인다는 것

이 정도면 그동안 왜 빨리 안 바꿨나 수긍이 갈만합니다.

 

형제. 오래된 관계의 시작

돌궐(突厥). 익숙한 이름이죠? 튀르키예를 한자로 표시한 이름입니다.

튀르키예와 우리는 1,500년 이전 고구려 때부터 인연이 시작되었다 하는데요 연개소문은 돌궐의 공주와 혼인하여 우호관계를 돈독케 하기도 했고 고구려 멸망 시 많은 유민들이 돌궐로 망명하기도 했기에 고구려의 영향은 물론 피가 섞이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죠

또한 흉노족(진시황이 만리장성을 쌓은 이유가 흉노족 때문), 훈족, 그리고 이후 등장한 오스만 투르크 까지 모두 튀르크인의 나라였고 지금 우즈베크족, 카자흐족, 키르기스족, 아제르바이잔족, 위구르족 등 모두 튀르크의 후예인데

역사적으로 동, 서양을 막론하고 1,500년 동안 우호관계를 이어온 나라는 단연코 없죠. 당연히 국계관계에서 영원한 우방도 적도 없다는데 이점만을 보더라도 우리와 튀르크는 시작부터 특별한 겁니다.

 

6. 25. 피를 나눈 형제가 되다

한국전쟁은 다소 올드했던 양국의 형제애를 서로에게 각인시켜 준 역사적 사건이 됩니다.

한국전 당시 세계에서 4번째로 많은 2만 2천여 명을 파병한 참전국으로 741명 사망, 166명 실종, 2068명 부상이란 미국, 영국에 이은 3번째로 큰 희생을 보여줬던 혈맹입니다.

참전을 결정하기 전 튀르키예의 처한 상황이 나토에 꼭 가입해야만 소련으로부터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었기에 터키에게는 나토가입의 좋은 기회였다고 의도를 다소 폄훼하는 이들도 있지만 당시 터키민족학생연합이란 고등학생들의 "형제의 나라에서 전쟁이 났는데 왜 당장 파병하지 않느냐?"는 대규모 시위를 일으킬 정도로 전 국민의 동의 속에 참전을 결정하게 됩니다.

참전 튀르키예 군인 다수가 쿠르드족이라는 사실도 있지만 애니웨이

이후 터키의 젊은이들이 전쟁터에서 보여준 용맹함과 특히 중공군을 맞아 싸운 군우리 혈투의 빛나는 전공은 그들이 처한 정치적 상황을 넘어 형제의 나라에 진심이었음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생각합니다 또한 이로 인해 터키도 그동안 거부당했던 나토 가입이 공식 승인(1951. 9월)되어 자국의 안전이 보장받은 계기가 되었기 때문에 서로를 형제의 나라라고 부르기에 망설임이 없었던 것이죠.

아직도 부산의 유엔군 묘지에는 462구의 튀르키예 군인의 묘가 있는데 이들을 송환하지 않은 것은 전사자는 이장 없이 24시간 내에 군복을 입은 채로 전쟁터 현지에 묻는 튀르키예 전통에 따른 것이라고 합니다.

아시겠지만 한국전쟁에는 튀르키예 말고도 참전국이 많이 있지만 유독 튀르키예만 형제국으로 얘기를 하는데

그들이 다른 참전국과 달랐던 점은 종전 이후에도 한국에 남아 재건을 도왔고 그것을 위해 인원을 보냈다는 점으로

1950~1961년까지 매년 1개 여단씩 총 10개 여단, 1961~1966년 까지는 소대 규모로 폐허의 한국을 재건했고 1971까지 머물며 수백 명의 전쟁고아에게 쉼터와 식량을 제공한 사실입니다.

2018년 개봉된 아일라(Ayla : The Daughter of War)라는 영화는 터키병사 '슐레이만'과 전쟁고아 '김은자'씨의 실화를 다룬 영화로서 6. 25때의 인연을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다시 이어 주고 있습니다.

극적 재회한 '아일라'의 실제 주인공 슐레이만과 김은자씨

2002년 형제애를 되살리다

온 대한민국을 붉은 물결의 환희로 물들였던 2002년 한일월드컵도 벌써 20년 전 이야기가 되어버렸네요.

다시 우리나라가 단독으로 월드컵을 개최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지금 세대에게는 정말이지 레전드 같은 옛이야기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때 3, 4위전에서 우리와 튀르키예 사람들은 생소했지만 서로의 오래된 인연을 다시 생각할 수 있었고 잊혀 가던 형제의 역사를 재 조명하여 뜨겁게 마주 볼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인연은 질긴 것이겠지요

 

유튜브를 검색해 보면 볼 수 있는 영상이 있습니다.

튀르키예 사람들은 얼마만큼 우리나라를 형제국으로 생각하고 있을까? 하는 내용인데 생각보다 그들의 반응도 그렇고 아제르바이잔을 형제국으로 더 많이 언급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물론 한국도 꽤 많은 사람들이 언급하기는 했지만요.

하지만 다른 어떤 이유가 퇴색되고 잊힌다 해도 이름도 몰랐던 머나먼 타국의 자유를 위해 그들의 젊은 목숨을 아끼지 않고 도와준 그들의 고마움은 도움받은 우리들이 두고두고 갚고 감사하며 표현해야 될 일이라고, 그들이 잊지 않도록 우리가 다시 알려주고 고맙다고 말해야 되는 일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이 정도면 튀르키예를 형제국이라 말하는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끝으로 다시 한번 희생자의 명복을 빌며 튀르키예 재건에도 우리가 많은 도움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해 봅니다.